[김석오 칼럼] 관세 인하에 가려진 미국 통관의 ‘보이지 않는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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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22회 작성일 25-12-28 18:34본문
미국 관세 인하의 이면:
낮아진 관세, 높아진 원산지·공급망 장벽
미국이 지난 11월 1일부로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부과해오던 관세를 소급 적용하여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로 보이지만, 이를 곧바로 ‘수출 확대로 이어질 호재’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관세 장벽이 낮아진 자리를 미국의 공급망 조사와 원산지 검증 강화라는 새로운 비관세 장벽이 빠르게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상호관세·품목관세 부과를 위해 원산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한미 FTA 원산지규정과 다른 ‘실질변형기준’이다. 단순 조립·혼합·절단·코팅·포장 수준의 공정은 실질변형으로 인정 받기 어렵다.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해외에서 생산된 핵심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한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해 고율 관세를 부과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관세율 자체가 낮아지더라도 실질변형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혜택을 누릴 수 없고, 오히려 통관 지연과 사후 관세 추징이라는 더 큰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우회수입에 대한 미국의 문제의식은 심상치 않다. 우회수입이 적발될 경우 최대 40%의 환적관세(transshipment duty)가 부과될 수 있으며, CBP가 발표한 최근 통계에서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우회수입 적발 국가로 분류된 것은 뼈아픈 일이다. 이는 공급망 투명성 확보가 단순한 윤리적 문제나 기업 자율의 영역을 넘어 국가 이미지와 무역 신뢰 회복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을 뜻한다.
강제노동(Forced Labor) 리스크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신장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근거로 공급망 어디에서든 강제노동 개입이 의심되면 수입 자체를 차단한다. CBP는 원산지 검증 과정에서 단순 제조지뿐 아니라 원재료·부품·공급자의 출처까지 확인한다. 강제노동 의심만으로도 압류 조치가 내려질 수 있고, 기업은 철저한 소명 절차와 상당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수출 기업은 이번 관세 인하를 단순히 ‘수출 확대 기회’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관세 인하는 시장 진입의 문을 넓혀주지만, 그 문턱은 미국의 강도 높은 공급망 규제로 인해 더 높아지고 있다. 관세 혜택을 안정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조달·설계·공정 단계에서부터 원산지 기준을 내재화한 체계적 공급망 관리가 필수적이다.
정부 또한 기업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美 CBP의 원산지 사전판정(advance ruling) 지원, 강제노동 리스크 진단, 공급망 이력추적 시스템 구축, 해외 통관 리스크 모니터링 등 종합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원산지 준수는 더 이상 수출 서류 작업의 일부가 아니라, 국가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미국의 관세 인하는 분명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 열쇠는 아니다. 원산지·공급망 투명성을 갖춘 기업만이 미국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기업과 정부가 이번 변화를 계기로 글로벌 통상환경의 구조적 변동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김석오 ICTC 국제관세무역자문센터 이사장 / 전 수원세관장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