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오 칼럼] 미국의 숨겨진 비관세장벽, 원산지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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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1,606회 작성일 20-07-24 17:02본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자국의 국내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반덤핑방지관세, 세이프가드조치는 물론 자국의 안보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미국은 나아가 자동차에 대해서도 25%의 고관세 부과조치를 검토하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장벽은 이것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한-미FTA 발효 이후 대미 수출상품에 대한 미 세관의 빈번한 원산지검증은 우리 수출기업을 힘들게 하는 또다른 장벽이다. 원산지검증은 개별 기업을 상대로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원산지검증을 지나치게 강화할 경우 세이프가드조치보다 더 강력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원산지검증을 ‘숨겨진 보호장벽(hidden protection)’이라고도 한다.
필자가 수원세관장으로 근무하던 2018년도에 수원지역 공장에서 제조하여 미국으로 수출된 첨단 IT제품에 대하여 미 세관이 원산지검증을 실시하였고, ‘기한내 증빙자료 미제출’이라는 이유로 한-미FTA 특혜관세가 거부된 바 있다. 이에 따라 후속 수출 건에 대해 대미 수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미 세관은 한-미FTA가 발효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1,455건의 한국 상품에 대해 원산지검증을 실시하였고, 이중 39.5%인 574건이 원산지규정 위반 판정을 받아 관세 추징을 당하였다. 원산지검증을 받은 품목은 전기·전자제품, 자동차부품, 기계류 및 섬유제품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상품에 집중되었다. 이 중 섬유제품과 전기전자제품의 피해가 가장 컸다.
미 세관은 원산지를 검증할 때 주로 어떤 증빙자료를 요구할까?
수출품목이나 원산지기준 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원산지증명서 △원가내역서 △생산증빙서류 △원자재내역서 △국내산부품 원산지확인서 △공정설명서 등과 같이 해당 물품의 실제생산 여부와 원산지기준 충족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상세한 자료를 요구한다.
소요원자재나 부품의 종류가 많을수록, 모델과 규격이 다를수록 준비해야 하는 증빙자료의 양은 방대해진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증빙서류 작성 및 검증대응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미 세관이 특혜관세를 적용 배제하는 주요 사유를 보면, △미 세관의 검증착수 통지에 아무런 응답이 없거나 △기한 내에 요구받은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제출한 증빙자료에 충분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원산지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유의할 점은 수출물품이 실제 한국산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미 세관이 요구한 자료를 기한 내에 정확하게 작성해서 제출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우리 수출기업이 당한 피해사례를 분석해 보면 기한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미 세관이 요구한 자료를 일부 빠뜨리거나 부정확하게 작성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증빙자료는 영어로 작성하여야 하고, 한글로 작성된 증빙서류는 영문 번역본을 첨부할 필요가 있다. 미 세관은 요구한 증빙자료가 한건도 빠짐없이 전부 접수되어야 원산지 본안 심사로 들어가기 때문에 필수서류가 구비되지 않으면 ‘원산지입증불충분’으로 판정하고 특혜관세를 배제해 버린다.
미 세관은 보호무역주의 정책 방침에 따라 수입억제를 위한 각종 단속활동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중에 FTA 체결상대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한 원산지검증 강화도 포함된다. 미 세관의 원산지검증을 피해가려면 대미 수출상품에 대한 정확한 원산지증명서 발급 및 각종 원산지증빙자료를 수출건별로 작성하여 최소 5년간 보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원산지관리업무 매뉴얼을 작성하고, 전담자를 지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미 세관과의 원활한 업무 연락을 위해 수입자 또는 수출자의 주소지와 연락처가 변경된 때에는 현지 통관대행사를 통해 미 세관에 미리 알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사무실 이전으로 업체가 미 세관의 통지문을 제때 받지 못했다면 그로인한 불이익은 업체의 책임이다.
원산지검증 대응은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혹시 미 세관으로부터 자료제출 요구를 받았다면 FTA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권고한다.
ICTC이사장/경영학 박사/전 수원세관장